[핵심 2]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란? 뇌과학으로 보는 창의성
우리는 집중하고 있을 때만 뇌가 활발히 작동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뇌과학은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줍니다.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도 활발히 움직이며, 오히려 그 순간이 창의성의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입니다. 이 글에서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구조, 기능, 그리고 창의성과의 과학적 연관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실생활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란 무엇인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는 인간의 뇌가 의식적인 과업에서 벗어난 상태, 즉 휴식 중이거나 내면적인 사고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회로입니다. 이 개념은 2001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엘(Marcus Raichle) 박사 연구팀에 의해 처음 명명되었으며, 그 이후 신경과학계에서 창의성, 자아 정체성, 기억, 공감 능력 등을 설명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DMN은 주로 다음의 뇌 부위들로 구성됩니다:
- 내측 전전두엽 피질(MPFC): 자아 인식 및 의사 결정과 관련
- 후대상 피질(PCC) 및 정수리 내측 피질(Precuneus): 기억 회상과 자기 반영
- 측두하부 피질(LTC): 과거 경험, 정서적 기억과 연결
- 해마(hippocampus): 장기 기억과 시뮬레이션된 미래 계획 참여
DMN은 ‘디폴트(default)’라는 이름 그대로, 기본적으로 활성화되는 모드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서 외부 정보를 처리할 때는 ‘집행 조절 네트워크(Executive Control Network)’나 ‘주의 네트워크(Salience Network)’가 작동하며, 이때 DMN은 억제됩니다. 그러나 작업이 종료되거나 멍한 상태로 전환되면, DMN이 다시 전면에 등장해 뇌의 활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네트워크가 단순한 정지 상태가 아니라, 내면 세계를 탐색하는 매우 활발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자아 성찰, 미래 계획, 상상, 창의적 사고, 도덕 판단까지—DMN은 우리가 ‘생각한다’고 느끼는 거의 모든 인지적 활동에 관여합니다.
![]() |
|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상태에서 오히려 활발하게 연결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시각화 (AI 분석 모델 기반 재구성) |
디폴트 모드와 창의성의 연결 고리
그렇다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창의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창의성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기존의 아이디어를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발현됩니다. 이러한 사고는 대부분 비선형적, 자유 연상적이며, 명확한 목표 지향보다는 무목적적인 상태에서 더 잘 발생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DMN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DMN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창의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 자유 연상과 시뮬레이션 기능
DMN은 뇌 내 여러 영역 간의 연결성을 통해 과거 경험, 감정, 기억 등을 무의식적으로 통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확장합니다. 이러한 연상은 기존에 없던 조합을 만들어내며, 예술적 창작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 정신적 시뮬레이션(Mental Time Travel)
과거를 떠올리거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DMN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만약~라면’이라는 가정 아래 수많은 시나리오를 구성하게 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한 창의적 접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 집행 네트워크와의 상호작용
창의적인 사람들은 DMN과 집행 조절 네트워크 사이를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즉,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다시 집중 모드로 가져와 구체적 작업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 두 네트워크 간의 유연한 연결성(flexibility)이 바로 창의성의 핵심 요소입니다. - 과학적 근거
2015년 네덜란드 래드바우트 대학교 연구팀은 창의성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DMN과 전두엽 네트워크 간의 연결성이 높다는 것을 fMRI를 통해 입증했습니다. 또한, 예술가나 작가의 뇌를 스캔했을 때, 이 네트워크가 일반인보다 더욱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창의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단지 감각적인 감정이나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정확한 뇌 구조와 연결성을 바탕으로 설명 가능한 인지 기능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 |
| 명상과 의도적인 휴식을 통해 뇌의 여백을 확보하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활성화하는 과정 (AI 분석 모델 기반 재구성) |
디폴트 모드를 활성화하는 실천법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이점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려면, 이를 의도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뇌과학적으로 검증된 DMN 활성화 방법입니다:
- 의식적인 ‘멍 때리기’ 시간 확보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 끊임없는 외부 자극을 피하고, 아무런 목적 없이 주변을 산책하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멍한 시간 동안 뇌는 외부 입력을 차단하고 내면의 네트워크(DMN)에 접속하게 됩니다. - 명상과 마음챙김 훈련(Mindfulness)
명상은 DMN의 활동성을 높이면서도, 필요할 때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메타인지적 통제력을 함께 길러줍니다. 특히, 비판단적 자기 인식을 기르는 명상 방식은 창의적인 사고 전환을 도와줍니다. - 자기 성찰 글쓰기(Journaling)
자신의 감정, 과거 경험, 미래 계획 등을 글로 쓰는 행위는 DMN을 활성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뇌는 이러한 내면 탐색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고의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단조로운 반복 활동
설거지, 조깅, 청소 같은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의식적인 사고를 최소화하고 뇌의 DMN을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이런 활동 중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험이 많다면, 바로 이 메커니즘 덕분입니다. - 잠재적 ‘스페이스’ 확보하기
하루 일과 중 일정한 시간 동안 집중하지 않음을 스케줄에 포함시키는 것도 전략입니다. 특히, 고차원적 기획이나 창의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30분이라도 의도적인 여백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의 여백을 먹고 자라는 창의성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단순한 휴식 상태의 뇌 활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장 깊고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인지적 기회 창구입니다. 최근 뇌과학은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창의성은 천재성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적인 뇌 사용 방식의 결과라고 말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일부러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뇌는 그 틈을 통해 자신만의 연결성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창의성은 곧, 생각의 여백 속에서 자라납니다.
"뇌에 진정한 여백을 선물하는 법을 알았다면, 이제는 그 여백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방해꾼을 마주할 차례입니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끝없이 이어지는 숏폼 영상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일까요? 다음 글([[핵심 3] 디지털 중독의 과학: 도파민 보상 회로와 뇌의 구조적 변화 분석])에서는 우리의 의지력을 무력화하고 뇌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디지털 중독'의 실체와 도파민 보상 회로의 무서운 메커니즘을 파헤쳐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