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소비에서 콘텐츠 창조로 넘어가기: 감각을 되찾고 생각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우리는 왜 ‘보는 사람’으로 머무르게 되는가
하루를 돌아보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것보다 타인이 만들어낸 것을 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손에 쥔 스마트폰은 필요한 순간보다 훨씬 많은 순간에 켜지고, 화면 속 정보는 생각할 여지가 없는 속도로 넘어온다. 특히 짧은 영상과 실시간 피드 형식의 콘텐츠는 ‘머무름’보다 ‘통과’를 유도한다. 콘텐츠는 사라지지만, 그 순간에 소모된 감정과 주의력은 그대로 남는다. 이 과정은 처음에는 가볍다. 단 몇 초의 자극으로 즐거움과 기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비를 반복한다. 그러나 반복이 지속되면 소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이어지면 감각과 생각은 점차 수동적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잠들기 전, 식사 중, 이동 중, 대화를 하던 중에도 손은 화면으로 향한다. 이는 단순한 의존이 아니라, 감정의 작은 변화를 즉시 ‘다른 자극’으로 덮는 과정이다. 소비는 즉각적인 포만감을 준다. 그러나 그 포만감은 금세 사라진다. 다시 소비를 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이 흐름 속에서 창조로 넘어가는 에너지는 점점 남아있지 않게 된다. 창조는 깊게 머무는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소비는 깊게 머무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나는 왜 만들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는 왜 시작조차 어렵게 느껴질까?” 하지만 이 질문의 본질은 재능이나 의지의 부족이 아니다. 감각의 회복 없이 창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창조란 특별한 순간이나 영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머무르고, 느끼고, 사유하는 시간에서 발생한다. 그 시간이 없으면 창조는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콘텐츠 소비에서 창조로 넘어가는 과정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창조는 감각을 되돌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콘텐츠 창조의 핵심은 뛰어난 표현 능력이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력의 방향이다. 소비의 주의력은 바깥으로 향한다. 창조의 주의력은 안쪽으로 향한다. 이 전환은 다음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스마트폰·콘텐츠 소비의 ‘감정적 이유’를 먼저 발견한다 :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대부분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 지루할 때 → 빠른 자극으로 감각을 채움 - 불안할 때 → 비교와 자극으로 감정을 잠시 덮음 - 외로울 때 → 타인의 세계를 보는 것으로 대리 충족 - 피곤할 때 → 사고를 멈추기 위해 화면에 기대기 즉, 소비는 감정을 소화하지 않을 때 선택되는 즉각 반응이다. 따라서 소비를 줄이려면 강제로 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화면을 켰는가?” 를 관찰해야 한다.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소비는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적 선택 상태가 된다. ② 감각을 되살리는 ‘정적 영역 활동’을 일상에 다시 넣는다 : 창조는 감각이 다시 살아날 때 시작된다. 감각이 살아나지 않으면 생각은 흐르지 않고, 생각이 흐르지 않으면 창조는 형태를 갖지 않는다. 다음은 감각을 회복시키는 대표적 활동들이다. - 이어폰 없이 걷기 - 손으로 글씨 천천히 쓰기 - 3분 동안 눈 감고 호흡하기 - 물 마실 때 온도 감각 관찰하기 - 사물의 표면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기 이 활동들은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하다. 감각이 돌아오면 생각은 스스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③ 관찰을 기록으로 옮긴다 (아주 짧게) : 기록은 창조의 첫 형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글을 쓰려 하지 않는 것이다. 기록은 ‘메모’의 단계에서 충분하다. 예시: - 오늘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 - 산책 중 들린 소리 하나 - 오늘 마음이 잠깐 흔들린 순간 - 어느 말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창조의 원천은 거창한 경험이 아니라 사소한 관찰에 있다. ④ 생각을 언어로 그려내는 시간을 짧게, 그러나 자주 확보한다 : 창조는 ‘긴 시간’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에서 태어난다. 하루 10분씩이라도 자기 생각을 언어화하면, 사유의 흐름은 점진적으로 깊어진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강도가 아닌, 빈도다. 짧은 사유가 쌓이면 문장은 자연스럽게 명료해진다. ⑤ 비교를 멈추고 나만의 속도를 회복한다 : 소비는 타인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창조는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는 언제나 조용하고 느리고 은근하게 시작된다. 스스로의 속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창조의 리듬이 형성된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게 머무를 줄 아는 사람’이다
콘텐츠 창조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창조는 감각을 되찾는 순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감각이 회복되면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면 언어가 생기고, 언어가 생기면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은 거창하지 않다. 혼자 걷는 10분의 산책, 창가에 앉아 멍하니 빛을 바라보는 시간, 조용히 한 문장을 곱씹는 순간 속에서 일어난다. 소비의 흐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세상을 거부하거나 빠르게 단절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자신의 감각과 연결되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는 이미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느끼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감각을 스스로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창조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